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밀양 손씨 (문단 편집) == 설명 == 시조는 문효공 손순으로 신라시대 사람이다. 기록에 따르면 [[흥덕왕]](興德王) 시절 노모를 모시고 있었는데 어린 자식이 자꾸 노모의 음식을 뺏어먹는 등 말썽을 부리자 효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아이를 뒷산에 묻어서 버리려고 아이를 업고 올라가 땅을 팠더니 옥으로 만든 석종이 발견되어 "이는 아이의 복이다"라는 부인의 만류로 도로 산을 내려왔다. 그 석종의 소리가 밝아 종을 치면 신라 왕궁까지 소리가 들려 흥덕왕이 이 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사연을 알아보라 명하여 사연을 알게 된 후 집 한채와 쌀 50석과 6두품 귀족 작위를 주었다. 손순의 손자 손익감(孫翼減)이 공을 세워 응천군(凝川君)에 봉해지면서 밀양을 본관으로 삼았다. 중흥조(中興祖) 손긍훈(孫兢訓)이 고려 태조를 도와 후삼국을 통일하는 데 공을 세워 보국숭록대부(輔國崇錄大夫)에 오르고 광리군(廣理君)에 봉해져서 가세(家勢)를 크게 일으켰다. 밀양 손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8명, 무과 급제자 125명을 배출하였다. 밀양 손씨는 공부를 하는 [[왕족]] · [[귀족]]보다는 무신(武臣)이 많았다고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